칼럼

KAIST 졸업한 아들, 오늘 수능을 다시 본다.

조무주 2007. 11. 15. 08:22

  우리집 아들이 수능을 봤다. 남들은 결혼할 나이인데 수능을 본다니 찹찹하기만 하다. 새벽에 일어나 시험장까지 데려다 주고 왔다. 정말 잘봤으면 좋겠다. 처음으로 겪어 보는 수험생 부모의 마음...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 아이(아이도 아니지만 마땅히 호칭이 없어서)는 과학고를 2년만에 수료했다. 그리고 카이스트에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후 몇몇 기업체에 시험을 보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공기업체에 합격하여 입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주위에서 부러움을 받는 아버지였다. 내 친구 중에는 몇년째 자식이 취직을 못해 애간장을 태우는 경우가 있으니까.


  우리 아이는 수능도 보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곧 취업을 하고 3년간은 공기업체에 잘 다녔으니 이만하면 걱정없는 부모 아니였던가. 그런 자랑스러웠던 아들이 올해 수능을 본다. 정말 수험생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 새삼 느끼고 있다.


  지난 1월이었다. 나는 사정에 의해 그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중이었다. 20여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또 갈등도 많았다. 그래도 그동안 배운 특기가 있어 퇴직 한달만에 무난히 새로운 직장을 잡을 수 있었다.


  직장을 그만둔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말할 기회도 없었고 상의하기도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서 아이는 내가 20여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 아이가 내 방으로 건너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아들이 결심을 한 듯 3년간 다닌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나도 직장을 그만 두고 새로운 직장을 찾는 때여서 아들이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아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하겠다고 말했다. 그것도 재수를 하여 수능을 보고 대학에 다시 입학하겠다는 것이었다. 98학번인 아들이 10년간 안한 고등학교 공부를 다시 하겠다는 것은 청천병력 같은 말이었다. 한의대에 입학하여 한의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유는 다니는 직장이 적성에 맞지 않고 초등학교 때의 꿈인 과학자가 되는 것은 단지 꿈일 뿐이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차라리 직장인으로 평범하게 살려면 의사가 되어 몸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며 사는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돈도 지금보다는 많이 벌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아들은 이 문제를 놓고 이미 6개월 전부터 고민을 했고 이제 최종 결정을 하여 아버지와 상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의 결심이 확고한 것 같아 강하게 반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말했다.


  “카이스트는 우수한 과학 영재를 키우기 위해 정부가 장학금을 주고 기숙사도 거의 공짜로 사용하는 등 많은 혜택을 주어서 졸업을 시켰는데 다시 새로운 공부를 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손실이다. 기왕 공학을 전공했으니 대학원에 입학하여 전공 분야에서 더 공부하는 것이 어떠냐”고.


  그러나 아들은 “과학자의 꿈은 이미 접었다. 우수 학생들이 이공계를 왜 기피하는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늦었지만 의사의 길로 다시 가겠다”고 말했다.


  아들과 나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이도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아들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아들은 2월말 사표를 내고 3월부터 학원에 등록하여 8개월간 공부를 했다. 그리고 오늘 시험을 본다.


  아들이 정말 시험을 잘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꼭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게 부모의 마음 아닌가. 그러나 나는 지금도 과학과 수학에 탁월한 실력이 있는 우리 아이가 과학자의 꿈을 버리지 말기를 바라고 있다. 한의사가 된다면 그 분야에서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