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旁岐曲逕(방기곡경)의 의미

조무주 2009. 12. 21. 16:17

 올해 우리 사회를 비유한 사자성어로 旁岐曲逕(방기곡경)이 선정됐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 길이 아닌 샛길과 굽은 길'을 지칭하는 말이다. 교수신문이 전국 각 대학 교수,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 지식인 2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방기곡경이 뽑혔다는 것이다. 바른길을 좇아서 정당하게 일을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방기곡경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것은 세종시 수정, 4대강 사업 추진 등 국가 현안을 처리하면서 타협과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샛길, 굽은 길로 돌아가려 함을 비판하는 것이라는 교수신문의 설명이다. 한국 정치가 바르고 큰길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선정된 사자성어로 보인다.
 직장인들의 사자성어는 '먹고 살 걱정'이라는 뜻의 구복지루(口腹之累)가 선정됐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008명을 대상으로 올해 직장생활을 축약한 사자성어를 조사한 결과 21.6%가 구복지루를 꼽았다. 정치인들은 방기곡경에 직장인들은 구복지루의 한해가 된 셈이다. 우리 사회와 국민들의 고통을 잘 표현한 말로 생각된다.
 국회의 4대강 예산으로 촉발된 대치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야 모두 한발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넓은 길을 두고 샛길이나 굽을 길로 가려는 모습이 역역하다. 언제 부터인가 국회는 난장판에 싸움판이 되어 가고 있다. 타협과 대화는 소멸되고 극한 투쟁이 난무한다.
 올해 회계연도를 불과 11일 남겨둔 상황이다. 사상 초유의 준예산을 편성할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4대강 사업 삭감 규모를 제시하라는 민주당과 예결위에 들어와서 삭감을 논의 하자는 여야의 주장이 한치도 양보가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예산안 처리를 위해 예결위원 29명이 자체 예산 수정안 마련에 돌입했다. 만약 한나라당이 자체 예산안 수정으로 올해의 예산안을 통과 시키려 한다면 민주당은 더욱 극한 투쟁을 벌일 것이다.
 세종시도 마찬가지이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충청도를 열심히 방문하여 세종시 원안 수정을 설명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충청도민들은 원안 고수를 주장하고 있다. 충청도민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길을 왜 굳이 돌아 가려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충청도민들의 인식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9일 지상 1만1000m 상공에서 68번째 생일을 맞았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참석하고 귀국하는 날이 공교롭게 생일과 겹쳤다. 이날은 대선 승리 2주을 맞는 기념일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3년차를 맞아 새로운 각오로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기회로 삼겠다"면서 "새해는 서로를 위하면서 나라가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대선 승리 2주년을 맞는 날이지만 특별한 행사를 하지 않았다. 정국이 날로 꼬여가는 추세인데 거창한 행사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방기곡경의 한해가 저물면 여야가 타협하고 대화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를 바란다. 국민들은 구복지루의 심정이다. 먹고 살 걱정에 허리가 굽어가고 있는데 정치권은 민생에는 나몰라라 하는 꼴이다.
 청와대는 내년의 사자성어로 부위정경(扶危定傾)을 선정했다. 부위정경은 "위기를 맞아 잘못됨을 바로잡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뜻이라고 한다. 2010년은 여야의 극한대결이 끝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