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늦어도 사과를 하는데, 대통령은...
과학벨트가 들어서기로한 세종시
박성효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점심 식사에 늦어도 사과를 하는데 대통령은 과학벨트 입지 선정을 원점으로 돌리고도 사과하는 자세가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박 최고위원의 이 발언을 듣고 충청도민들은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 일반인들도 모임이나 개인 약속에서 시간이 늦으면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왜 늦었는지 이해하도록 해명한다.
길이 막혀서 늦었는지, 아니면 다른 급한 일이 발생했는지 해명을 하고 미안해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지난 1일 방송좌담회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충청권 입지는 공약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선거 유세에서는 충청도에서 표를 얻으려고 제가 관심이 많았겠죠"라고 말했다. 표를 얻으려고 한 말이기 때문에 이를 뒤집어도 된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공약집에도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도 사실과 다르다.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과학벨트 공약은 17대 대선 메니페스토 대전 충남·북 편 34쪽에 있고 특히 31쪽 세종시 공약에는 '행정도시 기능과 자족 기능을 갖추기 위해 과학벨트를 연계해 인구 50만 도시로 만들겠다'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벨트의 충청권 입지는 대통령의 공약에 명시되어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처럼 대통령의 발언이 잘못 됐는데도 이에 대한 사과가 없다. 대통령은 잘못 말을해도 국민에게 해명이나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박 최고위원은 "국민들이 정치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왜 정치인이 말을 바꾸냐는 것"이라며 "일하는 대통령에서 한걸음 나아가 믿을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려는 자세는 수긍하지만 약속을 너무 소홀하게 여기는 자세는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최고위원의 발언을 안상수 대표 등이 못하도록 막았다는 보도가 있자 주민들은 "최고위원의 발언권 까지 빼앗는 것을 보면서 한나라당의 언로가 막힌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과학벨트 문제는 쉽게 가라 앉을 분위기가 아니다. 우선 충청도민과 시민사회단체, 지역정치권이 정권 퇴진 운동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세종시 정상추진충청권비상대책위는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대통령의 파렴치한 과학벨트 공약부정, 후안무치한 백지화 주장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까지 냈다. 이 성명에서 "세종시에 이은 과학벨트 공약의 백지화를 밝히면서도 사죄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고 거짓 주장과 거짓 공약을 고백하면서도 당당함까지 보이니 오히려 국민들이 당황스럽고 무안할 지경"이라고 분개했다.
민주당 양승조 대표비서실장도 "대통령은 민심을 거스르지 말고 자신이 국민과 약속한 과학벨트 충청권 유치 공약 이행을 다시한번 촉구한다"면서 "만약 끝까지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제2의 세종시 사태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불복종 운동과 정권 퇴진 운동에 돌입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경고했다.
대통령은 이제라도 과학벨트 공약을 지키겠다고 해야 한다.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 처럼 버리는 지도자를 우리는 원치 않는다. 공약을 할 당시 가장 이상적인 입지라고 말해놓고 이제와서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을 누가 수긍하겠는가.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난장판 정국이 되어가고 있다. 이같은 혼란의 당사자가 대통령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