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대모 박병선 박사를 추모합니다.
직지의 대모라 불리웠던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가 23일 타계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박 박사는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들을 반환 받는데 공을 세운 것은 물론 직지를 찾아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직지가 청주에서 인쇄됐다는 사실이 확인돼 청주의 가장 큰 자랑이 되고 있으며 유네스코 직지상을 마련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청주가 직지를 인쇄한 고장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직지 하권 마지막 장에 '청주목외 흥덕사'라는 글자 때문이다. 이후 1985년 운천지구 택지개발 사업 과정에서 '서원부 흥덕사(書原府 興悳寺)'라는 글이 새겨진 청동 쇠북이 청주대박물관 김영진 교수에 의해 발굴되므로 흥덕사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장소에 지금 청주고인쇄박물관이 건립돼 매년 많은 관람객이 찾아오고 있다.
직지는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빠른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우리나라 활자문화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있다. 이에따라 청주시는 1998년 박 박사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했으며 정부에 건의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하도록 했다. 특히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확인해 국내에 알림으로써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받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워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박 박사는 지난해 1월 경기도 수원 성빈센트병원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은 뒤 10개월 만에 파리로 돌아가 병인양요 관련 저술 준비작업을 해왔으며, 지난 6월에는 외규장각 귀환 환영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귀국하기도 했다. 이때 이명박 대통령도 만났다.
2009년 박 박사의 암 투병 소식이 전해지자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돕기 운동을 전개했으며 1억2000만원의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또 청주시는 그에게 보은의 차원에서 지난해와 2009년 모두 4800만원의 연구비와 연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청주시는 박 박사가 영구 귀국하면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는 아파트를 제공할 계획도 세운바 있다.
그녀는 프랑스 소르본학과 프랑스고등교육원에서 역사학과 종교학으로 박사 과정까지 밟은 뒤 1967년 BNF에 들어가 13년간 근무하면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1980년 BNF를 그만두고도 매일 BNF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외규장각 도서를 열람, 목차와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서 반드시 국내로 반환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다졌다는 것이다.
박 박사의 빈소는 주불한국문화원에 차려졌으며 대사관은 유족 등과 상의해 장례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천주교 신자인 박 박사는 자신이 숨지면 화장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변에 유해를 뿌려줄 것을 당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녀가 1967년 발생한 동백림 사건 이후 프랑스로 귀화했지만 외규장각 도서 반환 등 국가적 공로가 큰 점을 인정,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세가 많아 건강을 회복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랬는데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타계하신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청주시는 박 박사의 사망을 계기로 기념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박사는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의 속편을 준비하다 병세가 악화되자 "병인양요 속편을 꼭 마무리지어 달라"고 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타계는 청주시민은 물론 전 국민에게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제 그녀의 유언인 병인양요 속편을 마무리 하여 생전에 다하지 못한 역작을 종결짓는 것이 우리가 그녀를 보내는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