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원문화 새롭게 조명돼야

조무주 2015. 1. 21. 09:12

  충북 충주 남한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화를 우리는 중원문화라고 말한다. 중원문화권의 대표적인 유물은 충주 고구려비다. 국보 205호인 고구려비는 '예성동호회'라는 향토연구회에 의해 발견됐다. 이 동호회는 1979년 9월 어느 식당에서 디딤돌로 사용하던 돌을 발견했다. 돌에는 연꽃무늬가 있었다. 답사팀은 "고려 충렬왕 3년 충주성을 개축하면서 성벽에 이 연꽃을 조각했다 해서 꽃술 예(蘂)자를 써서 충주를 예성(蘂城)으로 일컬었다"는 고려사 기록을 떠올렸다. 그래서 예성동호회가 되었다.
 이들은 충주지역을 중심으로 답사를 하다 입석마을에서 이 고구려비를 처음 발견하게 된 것이다. 충주 고구려비의 시기에 관해선 5세기 전반 광개토왕 때의 학설부터 6세기 평원왕 때의 학설까지 다양한 학설이 있었으나 449년 장수왕 때 축조됐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고구려시절 원 이름은 국원성(國原城)이었으나, 신라가 이곳을 빼앗은 뒤 중원경으로 삼았다. 중원경의 이름 때문에 중원군이 탄생했고 중원문화권의 이름도 얻었다.





 고구려비 존재가 확인된 1979년 4월에는 마모가 심해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높이 135cm, 폭 56cm, 두께 33cm인 화강암의 사면에 예서체 글씨가 1행 23자꼴로 528자 새겨져 있었다. 충주 고구려비는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다. 고구려가 충주까지 뻗어내려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형태가 만주 집안현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하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당시 고구려비 발견은 역사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었으며 예성동호회라는 아마추어 향토연구회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는 충주에서 기원전 2~1세기경 초기 철기시대 돌무지나무널무덤과 세형동검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고 한다. 중원문화재연구원은 충주시 호암동 충주종합스포츠타운 조성 부지에서 구석기 유물 포함층부터 초기 철기시대, 통일신라∼조선시대 무덤 등을 대량 발굴했다는 것이다. 초기 철기시대 무덤 3기는 땅을 파고 묘광을 만들어 목관을 안치한 것들로, 내부를 강돌로 덮은 돌무지나무널무덤이다. 이 무덤에서 한반도 초기 철기시대를 대표하는 세형동검 7점과 청동잔줄무늬거울 1점, 청동투겁창 3점, 청동 꺾창 1점, 청동 도끼 1점, 청동 새기개 4점, 청동 끌 2점 등 유물 19점과 토기, 칠기편 등 총 22점의 유물을 발굴했다. 유물은 목관 안과 바깥 부장품으로 각각 나뉘어 있었다. 이 무덤은 당시 충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강력한 세력의 우두머리 묘일 것으로 보인다.
 돌무지나무널무덤이 충북에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 무덤에서 나온 청동유물은 수량과 종류에서 볼 때 단일 무덤 출토품으로는 국내에서 최대다. 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의미다. 발굴된 유구의 잔존 상태가 매우 양호해 당시 무덤 축조방식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971년 전남 화순에서 출토된 세형동검, 잔줄무늬거울, 청동 새기개, 청동 방울 등은 국보 제143호로 일괄 지정된바 있다. 이 때문에 충주 유물들도 국보지정이 유력하다. 이제 스포츠타운 조성을 중지하고 이곳에 유물박물관을 지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할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