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역사 인식 변하지 않아
아베 일본 총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과 미국 정치권 등이 강력하게 요구해 온 사과를 묵살하고 '깊은 고통을 느낀다'고 만 표현했다. 아베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위안부에 대한 사과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다만 '고노 담화를 계승하고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고노 담화는 '위안부 모집과 이송, 관리를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강압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을 적시하고 있다.
한때 고노 담화를 수정할 것 처럼 주장해온 아베가 명료하게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여 역대 총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은 다소 고무적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우리 국민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중 시민단체, 미국 정치권과 언론들이 나서 명확한 사과 입장 표명을 요구해왔다. 아베는 이같은 요구를 묵살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어 "고노담회 지지 하에서 일본은 위안부에 대한 현실적 구제의 관점에서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는 2001년 고이즈미 총리 시절 정부 출연금과 국민 성금으로 '아시아 여성기금'를 만들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각각 200만 엔의 위로금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을 상기시키고자 한 말로 들린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의 공식 사과와 직접 배상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해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특히 "전쟁 중에 여성의 인권이 종종 침해 당해 왔다"고 주장, 위안부 문제를 전쟁중에 일어나는 일반적인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의 위안부 인식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다시 보여준 대목이다. 위안부 문제를 일반적인 문제로 희석시키기 위한 발언이어서 묵과 할 수 없다. 아베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강연에서도 9분여간 연설을 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질문자로 나선 한국계 조셉 최는 "일본군과 정부가 위안부 동원에 관여했다는 강력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 정부는 아직도 위안부 수십만명을 강제 동원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아베는 "인신매매에 희생 당해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겪은 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지만 사과의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에앞서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 등 전쟁시기 일본의 가해 행위에 대해 일본의 반성을 재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WP는 "일본 침략의 최후 생존 피해자인 한국의 위안부들은 그들의 세대가 무대에서 나가기 전 명확 함을 원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아베의 행적은 그런 명확 함을 확약하기에는 우려를 불러 일으킨다"고 평가했다. 또 WP는 "독일처럼 이제 일본도 조심스럽게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하며 이는 아시아의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이 환영하는 방식으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방문기간 아베의 언행을 보면 그의 역사 인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 사과의 뜻이 없음을 다시한번 확인됐다. 이제 한·일 관계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냉각될 것이다. 아베의 역사 인식이 바뀌지 않는한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는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