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작가 김성만씨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사회의 각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을 예술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도 뜨겁게 벌어진 적도 있지만 지금은 사진 예술의 위대성에 대해 재론의 여지가 없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진의 중요성과 대중성은 더욱 확대되고 지금은 핸드폰 보급으로 전 국민이 아마추어 작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처럼 사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아날로그 시대 사진 작가들의 공적도 잊어서는 안된다. 사진기 발명 초기 시대의 복잡한 카메라 메커니즘을 지금처럼 디지털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도 과학 뿐 아니라 사진 작가들의 노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충북의 사진 역사는 길지 않다. 사단법인 한국사진작가협회 충북지부가 결성된 1970년대 중반이 충북 사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사진 작가라 하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 중에 예술 사진에 눈을 뜬 몇명이 작가와 기관이나 언론사 등에서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었던 사람들이 사진 작가로 대접을 받았다.
김성만(71)씨도 1970년대 초 충북도교육청의 사진 전문직 공무원이 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사진과 인연을 맺은 것도 참으로 우연이었다.
김 작가의 고향은 황해도 송화군 풍해면 성산리다. 지금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북 땅이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젖을 얻어 먹을 수가 없어 서울에 사시던 작은 할머니 댁으로 내려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나마 자식이 없었던 작은 할머니의 도움으로 자란 그는 5살때 한국전쟁을 맞이했다. 당시는 누구나 헐벗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살던 어려운 시대였다.
서울에서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졸업식 날 작은 아버지가 김 작가를 창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재혼한 친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처음으로 친아버지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서울 청파동에 작은 방을 얻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대학에 진학했으나 학비가 없어 학교를 중퇴하게 된다.
그후 군에 입대하여 36개월 군 생활을 마치고 나와 새 어머니가 운영하는 고아원의 총무로 일하면서 이웃에서 사진관을 경영하는 사람을 만나 사진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충북도교육청에서 전문 사진기사를 뽑는다는 연락을 받고 응시, 즉석에서 공무원으로 채용되었다. 교육청에서는 행사 사진이나 인물 사진을 찍는 것이 주요 업무였으나 예술 사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달은 그는 독학으로 사진 공부에 매달렸다. 당시는 누가 사진에 대해 이론과 실제를 가르치는 사람도 없었다.
1976년 4월, 지금으로부터 42년전 29세 약관의 나이에 사단법인 한국사진작가협회 충북지부에 정식 회원으로 등록했다. 2년후인 1978년 1월부터 한국사진작가협회 충북지부 총무를 맡아 궂은 일을 마다않고 봉사에 나섰다. 그것이 지금의 충북사진협회로 발전하는 기반이 된 것이다.
78년부터 86년까지 무려 6년간 총무로 일하다 92년 3월 충북미술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이 됐으며 2004년부터 3년간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그가 지금까지 각종 전시회에 참여한 것만 따져도 대충 160여회에 달하며 그동안 중앙일보 사진 콘테스트 동상, 충북미술대전 동상 2회 특선 3회 및 입상 6회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또 가장 기억에 남는 상은 1985년 7월 12일 일본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 사진 콘테스트에서 도쿄로타리클럽 회장상을 수상하여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어린아이들이 알몸으로 하천에서 다이빙하는 모습을 흑백으로 찍은 것인데 최종심에서 아깝게 밀려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이같은 그의 노력을 인정받아 1994년 10월 충북 예술인으로써는 가장 큰 상인 '충북 예술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동심, 자연, 민속 등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어린이를 주제로한 동심은 천진스럽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순간 포착하여 형상화 하는 것이다. 제10회 아시아 사진콘테스트에 출품한 작품이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 군중 속의 어린이 모습, 공부하는 아이들의 표정, 운동회 광경 등 어린이들을 주제로한 작품에 특히 열정을 쏟았다. 이는 그의 직장이 교육청이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자연을 주제로한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가로수의 아름다운 모습과 인간과의 관계, 바다위로 날아가는 갈매기의 모습, 가을 낙엽과 연인, 동굴 속의 농부 이야기 등이 그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이외 군무 농악, 사물놀이와 탈춤, 탑돌이 등 민속 놀이도 그에게는 중요한 소재였다.
김 작가는 후배들에게 사진 예술을 제대로 전파하기 위해 그동안 서원대 평생교육원, 주성대 평생교육원, 중앙도서관 평생교육원, 충주대 평생교육원에서 제자를 가르쳤고 공주영상대학의 강사로 재직한 바 있다. 지금은 사진 동아리인 '빛사모', '서원포커스'의 자문위원으로 또 한국사진작가협회 운영 자문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