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법규 작가는 "한 알의 곡식이 모여 인류의 생명을 인도하는 것 처럼 풍요로운 생명과 지구의 정원을 화폭에 담는 심정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말한다.
그의 그림은 곡식 같기도 하고 밭 같기도 하고 풍요로운 생명을 잉태한 것 같기도 하다. 한 알의 밑알이 썩어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듯 그의 그림 세계는 생명이 근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류 작가는 지난 26일부터 8월 23일까지 청주시 서원구 사직대로 예일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다. 그동안 10여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지만 이번 초대전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개인전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wind of garden 시리즈 16점이 전시되고 있다. "생명의 바람이 불어 오면 외로운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는 감정으로 그린 그림이어서 관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원색의 강렬한 터치가 더욱 그렇다.
류 작가는 전라도 정읍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따라 서울로 이사를 했으며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워낙 몸이 약한 그는 공부도 운동도 잘하는 것이 없었다.
어느날 친구와 함께 덕수궁의 미술관에 갔는데 전시된 그림을 보고 '나도 그림을 그려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모들의 강력한 반대로 그림 공부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다 고3이 되어 대학 진학도 어렵게 됐고 운동 선수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갈 길은 그림 뿐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화실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 정식 등록을 한 것도 아니고 친분을 쌓아가며 구석 자리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화실 친구들과 소래포구로 야외 스케치를 나갔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이때 오기가 생겨 제대로 그림에 한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 1년 정도 그림에 올인했다. 1년이 지나자 선배나 친구들의 그림을 보니 별게 아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신림동에서 화실을 운영하며 공부를 하다 군에 입대하여 복무를 마치고 다시 그림을 그렸다. 27살에 결혼하여 화실을 운영하며 살림을 하다 1995년 처제가 살고 있던 청주로 이사를 오면서 충북과 인연을 맺게 됐다.
용암동에서 화실을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다 뜻한 바가 있어 아파트를 정리하여 천안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림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물정 몰랐던 류 작가로써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투자한 돈을 모두 까먹고 결국 빈 손이 되어 다시 청주로 돌아 오게 됐다.
청주시청 그림동우회 지도를 하다 만난 분의 소개로 1999년 화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그림 그리기에 나섰다. 1개월간 그림을 그려 충북미술대전에 출품, 특선한데 이어 2000년에는 드디어 충북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여기에 자심감을 얻은 류 작가는 금강미술대전, 목우회전 등에서 잇따라 입상하는 등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기쁨을 맛봤다. 이후 청주국립박물관, 청주예술의전당, 서울 갤러리 고도 등에서 10여 회 초대전을 개최했다.
또 한국 드로링 50년전, 드로잉 더 회원전, 충북 유명 작가 초대전, 나혜식 미술대전 초대 작가전, 경기미술대전 운영위원전, 공통분모 한중 당대 예술 교류전 등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에 참가했다.
그는 현재 화유회 회원, 드로잉 더 회원,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경기미술대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용암동에서 화실을 운영하며 후배 지도와 그림에 매진하고 있다. / 조무주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