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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자의 명절 증후군

by 조무주 2008. 2. 4.

나에게도 명절 증후군이라는게 있다.

항상 이맘때 쯤이면 올 설은 어떻게 잘 보낼까 걱정도 되고 짜증도 나고... 즐겁지가 않다. 내 고향 마을은 물 맑고 산 좋은 괴산의 한적한 농촌이다. 그곳에는 아직도 내가 태어난 집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살지 않는다.

 

유리창도 깨지고 담도 약간은 무너지고 여름에 자란 풀도 마당에 어수선 하고 한마디로 전형적인 농촌의 빈집이다. 그래도 양옥 2층에 꽤 괜찮은 집이었으나 아무도 살지 않으니 허물어지고 볼 품이 없다. 빈집으로 두느니 남에게 임대하라는 사람도 있지만 언제가 우리 형제들이 들어가서 살지 몰라 그렇게 빈집으로 남겨 두고 있다.

 

명절이 되면 나는 고향인 괴산으로 가는게 아니라 강원도 춘천으로 가야한다. 큰 형님댁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 춘천은 적어도 3~4시간을 자동차로 달려야 한다. 내 고향도 아닌 낯설고 물설은 춘천을 가야 하는게 나는 정말 짜증난다. 물론 큰집이 그곳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들은 꿈엔들 잊을 수 없다는 고향 마을로 달려가는 시간 나는 친구도 동창도, 맞아줄 산천도 없는 춘천으로 향해야 한다. 큰형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곳엔 형수와 조카들만 있다. 형님 없는 큰집으로 가는 것도 나는 항상 마음이 아프다. 형님이 살아 계셨다면 우리 집안이 훨씬 행복할 수 있었을텐데..자상하고 인자하고 동생들은 잘 챙겨 주시던 형님, 큰형님의 사진을 보며 혼자 눈물을 흘릴때가 많았다.  

 

형수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시다. 그래서 차례를 지내지 않으신다. 설남 아침이면 응접실에 빙 둘러 앉아 조상에 대한 추모 예배를 드린다. 나도 한때는 교회에 나가본 적이 있지만 기독 신자가 아니니까 찬송가도 서툴고 기도도 못하고 예배 시간은 늘 어색하다.

 

생전의 아버님은 차례를 지내지 않는 명절은 의미가 없다며 춘천에 오시지 않으셨다. 한마디로 기독교와 유교 사이에서 우리 가족들도 엄청난 갈등에 시달린 적이 있다. 차례를 지내느냐 마느냐...아버님은 차례를 지내지 않는 큰 며누리에게 불만이 많았고 독실한 형수님은 차례란 있을 수 없었다. 정말 그 당시의 우리 가족들은 갈등, 갈등의 연속이었다. 아버님이 돌아 가시면서 그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됐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다.

 

명절이면 전날 춘천에서 하룻밤 자고 예배를 드린뒤 조상 묘소가 있는 괴산 고향으로 달린다. 성묘를 위해서이다. 괴산으로 가는 길은 정말 지루하다. 길이 밀리면 춘천서 5시간 이상이 걸릴때가 있다. 장거리 운전에 약한 나에게는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고향가는 길이지만 그때 부터는 운전과의 전쟁이다. 

 

그래서 명절이 돌아 오면 즐거움 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특히 춘천 형수님 댁은 단독 주택이어서 아파트에서만 살던 나에게는 너무 춥다. 방바닥은 뜨겁고 우풍은 세고 감기 걸리기 쉽상이다. 춘천은 강원도라 그런지 더 추운것 같다. 올해는 제발 눈도 오지 말고 춥지 않아 감기에 걸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명절 증후군...그것은 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