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학 때 가졌던 꿈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첫 직장에서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사표를 썼다. 20년후 다른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로 옮기기는 했지만 다시 옮긴 직장도 같은 직종이라 일하는 것은 똑같다.
내 아들놈 고등학교를 2년만에 수료하고 KAIST를 졸업하여 수백대 1의 경쟁을 뚫고 공기업체에 입사, 잘 다니더니 어느날 사표를 썼다. 직장이 전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의대를 다시 입학하여 돈 잘 버는 의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직장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데...돈 잘버는 한의사가 되겠다는데... 어쩔 수 없어 대입 종합학원에 등록을 해줬다.
아들은 1년만 공부하면 자기가 원하는 한의대에 떡하니 붙어서 자랑스런 한의대생이 될 수 있을거라 믿었을 것이다. 사실 나도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됐지만 1년만 재수하면 한의대는 거저 들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머리가 나쁜 놈도 아닌데...
또 공부도 열심히 하여 처음 학원에 들어가서는 거의 꼴등이었지만 한단계 한단계 올라가서 수능 볼때 쯤에는 반에서 1~2등을 왔다갔다 했다. 학원에서도 어느 한의대에 붙느냐가 문제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래서 나도 철썩 같이 한의대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수능 보는날 너무 긴장한 나머지 가장 자신있다던 수리영역에서 망치고 언어 영역도 시원치 않고 결국 한의대에 원서를 냈지만 낙방이었다. 수능 보던날 시험을 망치고 집으로 돌아 온 아들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제가 설이었다. 명절이면 신형차를 몰고 자신만만하게 큰집으로 가던 아들놈이 집에서 쉬고 싶단다. 패배란 모르던 그에게도 충격이 컸을 것이다. 이제는 자동차도 없다. 재수 시작과 함께 중고차로 팔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차를 타고 가도 되겠지만 친척들을 만나기가 싫었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지난주 다시 1년 더 공부하여 한의대에 들어가고 싶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반대했다. 한의사가 인생의 다는 아닌데...더구나 수능에서 또 실수하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특히 요즘 한의원이 별로 인기가 없다는데...그런 이유가 재수를 허락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직장을 알아 보라고 했다. 아니면 늦었지만 철밥통이라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 보라고도 했다. 그런데 아들 놈은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모양이다. 매일 제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고 있다. 나는 아들이 제 갈길을 정하기 전까지는 잔소리를 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래도 요즘은 걱정이 밀려온다. 취업 하기도 쉽지 않을텐데... 카이스트를 나왔다고 원서만 내면 척척 취업이 되는 시대도 아니다. 토익도 다시 봐야 하고 면접도 다시 봐야 하고...이럴줄 알았으면 공기업체에 잘 다닐때 사표를 못내도록 말릴 걸, 뒤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때는 늦었다.
다시 취업을 한다해도 전에 다니던 직장보다 더 낫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참고 평생 직장으로 잘 다닐지도 걱정이고... 나도 잠이 오지 않는다. 어제는 새벽에 일어나 물을 먹으러 주방으로 가다보니 아들놈 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 놈은 나보다 더 걱정이겠지.
취업 포털사이트 인쿠르트가 직장인 2243명을 대상으로 2007년 이직 현황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더니 전체의 40.1%(899명)가 작년도 이직에 나섰다고 한다. 10명 중에 4명이 이직을 시도한 것이다.
나는 전국의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직장이 100% 마음에 쏙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직장을 찾아, 혹은 전업을 위해 사표를 내고 싶은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 도전이 모두 성공할 수는 없다. 현실에 충실하라,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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