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이 메이지유신 직후인 1869년 막부군과의 싸움에서 숨진 영혼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일본이 벌인 주요 전쟁에서 전사한 246만여 명을 신격화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야스쿠니는 '평화로운 나라'라는 뜻이지만 일본이 일으킨 무모한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모아 신격화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어서 한국,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비난을 받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억울하게 강제 징병된 우리나라 국민들이 많다. 이중 전사자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됐으며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까지 합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병됐다가 2차대전 당시 미군에 의해 포로가 되어 하와이에 수용된 충북 출신은 총 54명이었다. 이들 중 32명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됐다는 사실이 본보 취재에 의해 밝혀졌다. 더구나 이들 중 행방불명자 1명을 제외한 31명은 당시에 엄연히 살아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전사자와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이 이들 생존자를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한 것은 강제 동원 사실을 왜곡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된다.
올해 창간 68주년이 되는 본보의 자료실에서는 지난 1945년 11월 15일에 발간된 '자유한인보 3호'와 '일제 강제 징병자' 3000여명의 명단이 발견됐다. 이 명부를 중심으로 충북 출신에 대한 실태를 조사한 결과 강제 동원된 54명이 대부분 사망했으며 유족들만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함께 발견된 자유한인보 3호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유일한 자료로 확인되기도 했다. 자유한인보는 하와이 포로 수용소에서 우리나라 포로들이 만든 신문이다. 함께 발견된 일제 강제 징병자 명단을 조사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지원위원회'가 이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야스쿠니에 합사된 32명의 출신지는 청주 청원 20명, 옥천 5명, 제천 2명, 충주, 제천, 영동, 음성, 괴산, 단양 각각 1명 등으로 밝혀졌다. 합사자들은 대부분 1944년 8월 건설 현장 근로자로 있다가 1944년 12월 31일 전사한 것으로 일본 정부 명부에 표기돼 있다.
일본이 벌인 전쟁에 억울하게 동원되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된 사람들을 신사에 합사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합사된 당사자와 유족들이 일본에 합사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 사법부는 이를 기각했다. 지난 2007년 2월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피고에 추가,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다시 냈지만 일본 도쿄지방법원은 2011년 7월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일본 사법부가 일본의 입장에 충실하여 우리 국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엄정한 법 집행을 해야 할 사법부 마저 자신들의 책무와 의무를 저버렸다. 강제동원피해자인 충북 영동 출신 고(故)박춘하 씨(1980년 사망)의 딸 명자 씨는 선친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는 사실을 듣고 "기가 막히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이제라도 우리 국민을 합사에서 취소하기를 일본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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